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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는 예뻐 유명한 철학자들의 대표적인 철학
2025-01-12 17:11 | 조회수 : 16 | 댓글 : 0

1.에드먼트 버크


사회는 곧 계약이다.


사회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외친다. “내 잘못이 아니야.. 사회를 비난하라고”

그러나 사회라는 단어의 의미는 그리 명료하지도 않을 뿐더러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해왔다.

아이랜드의 철학가이자 정치가인 에드먼드 버트가 저술 활동을 하던 18세기에는 유럽이 점점 더 상업화되고 있었고, 사회란 영리회사와 미찬가지로 구성원들간의 계약이라는 생각이 쉽게 이해되었다.

하지만 이런 관점에는 오로지 물질적인 것만 중요하다는 생각도 담겨 있다.

이런 불균형을 바로잡으려고 버크는 과학, 예술, 미덕으로도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음을, 그리고 사회가 계약, 협약이긴 하지만 경제나 추잡한 동물적 생활에만 관련된 것은 아님을 사람들에게 일깨워주려 한다.

사회는 공익의 구현(관습,규범,가치관에 대한 합의) 이지만, 버크가 생각하는 ‘사회’는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의미할 뿐 아니라 조상과 후손도 포함한다.

더구나 모든 정치체제는 ‘영원한 사회의 위대한 원시계약’의 일부이므로, 신은 사회의 근본적 보증인인 셈이다.

버크는 원죄의 교리(인간은 날 때부터 죄인이라는 생각)를 중요시 하므로, 자기 행위의 책임을 사회에 돌리려는 사람들을 거의 동정하지 않는다.

또 그는 누구나 교육을 ㄷ으면 완벽해질 수 있다는 존 로크의 주장(인간은 모두 결백하게 태어났으니 올바른 영향만 받으면 된다는 식의 주장)을 일축해 버린다.

버크가 생각하기에 개인 판단의 불완전성은 곧 도덕적 태도를 제시하는 전통이 인간에게 필요한 이유다.

이 주장은 “습관은 인간생활의 위대한 길잡이다”라는 데이비드 흄의 주장을 연상시킨다.


전통과 변화

사회는 과거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는 유기적 조직이므로, 에드먼드 버크는 정치 제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전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이런 자연적 흐름을 끊어버리는 전면적, 급진적 정치 변화에 반대했다.

그래서 버크는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을 반대하며, 왕이 처형되고 1년간의 공포정치가 행해지기 한참 전에 혁명의 위험을 예견했다.

같은 이유로 는 장 자크 루소를 수차례 비난하기도 했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국민과 국가 간의 계약이란 국민들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 파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버크의 또 다른 표적은 영국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조지프 프리스틀리였다.

그는 프랑스 혁명에 갈채를 보내는 한편 원죄 관념을 대놓고 비난했다.

근대 상업사회를 회의적으로 바라보았음에도 버크는 사유재산제도를 열렬히 옹호하고 자유시장을 낙관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흔희 ‘현대 보수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린다.(보수주의는 전통과 경제적 자유를 모두 중요시한다.)

오늘날에는 심지어 사회주의자도 사유재산의 가치에 대해서는 버크와 생각을 달리하겠지만 사유재산제도가 필수적 사회제도라는 점은 수긍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생태계에 관심이 많은 철학자들도 ‘지속 가능한 친환경사회’의 수립 문제를 새로이 제기하되,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 지는 의무에 대한 버크의 신념은 공유한다.




2.제러미 벤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법률개혁가이자 철학자인 제러미 벤담이 확신한 바ㅔ 따르면, 모든 인간활동의 원동력은 고통의 회피와 쾌락의 추구, 이 두가지 뿐이다.

‘도덕과 입법의 원리서설’ 에서 그는 떤 사회적,정치적 결정을 내리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벤담에 따르면 그런 결정의 도덕적 가치는 행복이나 쾌락을 낳는데 그 결정이 얼마나 유용하고 효율적인가와 직결된다.

이런 ‘공리적’ 접근법이 주도하는 사회에서는 입법자가 최대한 여러 사람을 만족시킨다는 원칙만 따르면 사람들의 이익 갈등을 해소 할 수 있다.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훨씬 좋겠지만, 선택이 불가피하다면 소수보다 다수를 이롭게 하는 편이 항상 바람직하다.

벤담의 주장에 따르면, 그가 제안한 체제의 가장 큰 이점은 단순성이다.

그의 견해를 받아들이면 복잡한 정치체제를 잘못 해석해 불의와 불만을 야기하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쾌락계산


더 논란이 많은 부분은 개인이 경험하는 행복의 정도를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행복 계산법’을 벤담이 제시했다는데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 정교한 방법을 이용할 경우 도덕적 논쟁을 해결 할 객관적 기준을 얻을 수 있다.

쾌락을 가장 많이 산출할법한 견해를 지지하기로 결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또 벤담은 쾌락의 원천의 가치가 모두 동등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훌륭한 식사나 긴밀한 교우관계에서 비롯하는 쾌락이든 철학 논쟁니 시 감상처럼 노력이나 교육이 필요한 활동에서 비롯하는 쾌락이든 가치는 동등하다.

이는 곧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평등하며 사회계층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누구나 완전한 행목에 접근 할 수 있다고 벤담이 가정했다는 뜻이다.




3.메리 울스턴그래프트


정신은 성별이 없다.


기록된 역사의 대부분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된 존재로 나왔다.

그러나 18세기에는 이런 서열의 정당성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당시 탁월한 반대 목소리를 낸 사람 중 한명이 바로 영국의 급진주의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였다.

이전의 사상가들은 대부분 성별에 따른 육체적 차이를 근거로 들어 남녀 간의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17세기에는 ‘지식은 대부분 경험과 교육으로 얻을 수 있다’는 존 로크의 견해 등이 천명됨에 따라 그런 추론에 의문이 제기 되었다.


교육의 기회균등


남녀는 뇌와 정신이 근본적으로 비슷하므로 같은 교육을 받을 경우 똑같이 훌륭한 성품과 합리적 사고방식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에리 울스턴크래프트 는 주장한다.

그녀의 저서 ‘여성의 권리 옹호’ 는 장 자크 루소의 ‘에밀’에 대한 반박이기도 했다.

그 책에서 루소는 소녀는 소년과 다른 방식으로 교육 받으며 소년을 존경하는 태도를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여자도 남자와 같은 국민 대우를 받으며 동등한 법적,사회적,정치적 권리를 행사하게 해 달라는 울스턴 크래프트의 요구는 18세기 말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그러 그녀가 뿌려둔 씨앗 덕분에 (19~20세기)에 여성참정권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히 일어날 수 있었다.





4.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누가 어떤 종류의 철학을 선택하는가는 그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에 달려있다.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는 18세기 독일 철학자이자 임마누엘 칸트의 제자였다.

그는 인과적으로 결정된 듯한 세계(모든 사건이 불변의 자연법칙에 따라 이전의 사건 및 조건에서 필연적으로 비롯하는 세계) 에 살고 있는 인간이 어떻게해서 자유의지가 있는 도덕적 존재로 살아 갈 수 있는가를 고찰했다.

이처럼 ‘저기 밖에’ 우리 영향이 미치지 않는 독립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교조조의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계몽기에 득세한 사상이다.

하지만 피히테가 생각하기에 교조조의에서는 도덕적 가치나 선택이 존재할 여지를 전혀 남겨두지 않는다.

우리 외부의 어떤 존재가 만사를 결정한다면, 어떻게 사람들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여길 수 있을까?

피히테는 교조주의 대신 칸트의 사상과 비슷한 유형의 관념론을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정신이 우리가 현실로 여기는 모든 것을 창조한다.

이 관념론자의 세계에서 자아는 인과관계 외부에 존재하는 능동적 실체로, 자유롭게 독립적, 자발적으로 생각하고 선택 할 수 있다.

피히테는 관념론과 교조주의가 엄연히 다른 출발점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관념론과 교조주의는 결코 하나의 철학체계로 ‘조합’ 할 수 없다.

게다가 어느 쪽이 옳은지 철학적으로 증명할 도리도 없고, 둘 중 한쪽으로 다른 쪽을 논박할 수 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어떤 철학을 믿을지 ‘선택’할 수만 있다.

이 선택은 객관적, 합리적 이유가 아니라 ‘그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에 달려 있다.




5.프리드리히 슐레겔


철학보다 덜 철학적인 주제는 없다.


독일의 역사가이자 시인인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보통 후기 근세철학에 아포리즘(짧고 함축적인 말) 의 사용을 도입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789년 그는 철학에 대한 철학적 연구(메타 철학)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서양 철학이 기능하는 방식은 물론 직선적 논증이 최선의 접근법이라는 가정에도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슐레겔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르네 데카르트의 접근법에 반대하며, 확고한 ‘제1원리’라는 출발점이 있다는 그들의 가정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또 그의 생각에 따르면, 최종적 답변에 도달하기란 불가능한데, 그 까닭은 어떤 논증의 결론이든 끝없이 개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접근법을 설명하면서 슐레겔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철학은 항상 중간에서 시작해야 한다…

철학은 통합체이고, 그것을 인지하는 길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슐레겔의 전체론적 관점(철학을 통합체로 보는 관점)은 더 큰 맥락, 즉 예술과 삶에 대한 그의 낭만주의적 이론과 잘 어울린다.

그의 이론은 여느 계몽기 사상과 달리 합리적 사고보다 개인의 감정을 중요시한다.

비록 이전 철학에 대한 그의 비판이 꼭 옳지는 않았지만, 동시대인인 게오르크 헤겔은 재귀론운동을 이어나갔다.

재귀론은 철학 자체에 철학적 방법을 적용하는 이론의 현대적 명칭이다.




6.게오르크 헤겔


현실은 역사적 과정이다.


게오르크 헤겔은 19세기 전반 독일에서 가장 이름난 철학자였다.

그의 중심 사상에 따르면, 의식에서 정치제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현상은 하나의 정신(마음과 관념) 의 양태들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신은 이런 현상을 자신의 양태로 인식하고 재통합한다.

헤겔이 ‘변증’이라고 부르는 이 재통합과정(정신의 모든 양태) 우리가 ‘역사’라고 여기는 대상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헤겔은 만물이 한 가지 실체의 여러 양태라고 믿는 일원론자인 동시에, 현실이 근본적으로 물질이 아닌 어떤 것( 이 경우에는 정신) 이라고 믿는 관념론자다.

겔의 사상은 철학계에 근본적 지각변동을 몰고 왔다.

여기에 담긴 함의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헤겔 사상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역사와 의식


인간이 상당희 역사적인 존재임을 부정할 철학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서 뭔가를 무려받아 바꾼 후 미래세대에 물려준다.

예컨대 언어의 경우 우리는 그것을 배운 후 쓰면서 바꾼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과학자들은 어떤 이론체계에서 출발한 다음 그것을 확증하거나 부정한다.

가족, 국가, 은행, 교회 등의 사회조직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 대부분은 이전의 관습이나 조직을 수정한 형태를 취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삶을 맨손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맥락 안에서 시작한다.

게다가 그 맥락은 한 세대 안에서 급격히 변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 역사적이지 않은것, 즉 변화하지 않는 것도 있다.

그 일레는 의식이다.

몰론 우리는 자신이 의식하는 대상이 변하리란 점이야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문가를 의식하는 작용(깨어있는 상태에서 사물을 인식하며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는 작용) 만큼은 누구에게나 늘 똑같다고 믿는다.

또 생각의 구조가 역사적이지 않다는 주장도 그럴듯하게 들린다.

즉 생각이라는 행위와 각하는데 필요한 능력(기억, 지각, 이해 등) 은 역사를 통틀어 누구에게나 항상 똑같은듯 싶다.

이는 바로 헤겔에게 큰 영향을 끼친 선배 관념론자 임마누엘 칸트가 믿은 바다.

헤겔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그가 칸트의 사상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칸트의 범주


칸트가 생각하기에, 생각이 이루어지는 기본방식과 의식의 기본구조는 선험적이다.

즉, 그것들은 경험에 앞서 존재한다(따라서 경험이 아니며 경험에서 비롯하지도 않는다)

이 말은 곧 그것들이 우리가 생각하거나 의식하는 대상과는 물론 역사적 영향이나 발전과도 무관하다는 뜻이다.

칸트는 이런 생각의 구조를 ‘범주’ 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인과, 실체, 존재, 현실등의 개념이 포함된다.

이를테면 우리는 경험으로 외부세계에 대한 지식은 얻을수 있을지 몰라도, 외부세계에 인과관계가 실재하는지는 알아낼 수 없다.

칸트가 생각하기에 외부세계의 기본구조에 대한 지식은 선험적이다.

그런 지식의 인식은 경험의 틀을 제공하는 범주를 우리가 날 때부터 갖추고 있기에 가능하다.

그 틀에는 외부세계가 존재한다는 가정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칸트에 따르면, 선험적 틀이 있다는 말은 곧 겉으로 보이는 세계란 인간 마음의 본질에 좌우되는 것일 뿐 있는 그대로의 세계 ‘자체’를 나타내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 ‘있는 그대로의 세계 자체’ 를 칸트는 ‘본체계’라고 일컽으며,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칸트에 따르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범주의 틀을 통해 우리에게 나타나는 세계뿐이다.

이는 칸트가 말하는 ‘현상계’, 즉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세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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