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동아시아
아가는 예뻐 88서울 올림픽의 위엄
2025-01-29 21:33 | 조회수 : 13 | 댓글 : 0

88서울 올림픽은 과거의 향수중 하나이다.

하지만, 올립픽에 대한 열망이나 환호가 사라진 현대에서는 올림픽을 치뤘다는 영광의 자부심은 별로 없는듯 하다.

그렇지만 88년도, 그 시기에 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하는 곳에서 이 올림픽으로 인한 큰 파도가 한바탕 쓸고 지나간 지역이 있다.

그건 바로 과거 공산권, 특히 동유럽권이였다.



이 시절 올림픽이란 강대국만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80년 모스크바 올림픽, 84년 LA올림픽, 서울 올림픽 바로 직전의 올림픽이 모두 세계 탑급의 국가에서 개최되었다.

그런데 공산권 특유의 언론통제와 선동정치로 인해 세상물정에 어두웠던 동구권 국가 국민들에게

모스크바와 LA올림픽에 바로 이어서 열린 서울 올림픽의 이미지란 충격과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이때까지 동유럽 국가들에게 한국이란 나라 자체의 존재감은 희미했고

그나마 알고 있는 정보란 북한에서 배포한 북한식 선동정치물인 

"깡통차고 미군의 군화발 아래에 신음하며 미군이 던져주는 통조림으로 연명하며 다리 밑에 사는..." 

이런식의 인식이 다였던 동구권 국가 국민들에게 서울 올림픽은 느닷없는 충격 그 자체 일 수 밖에 없었다.


이어서 방송으로 그들에게 전파되는 올림픽과 그 배경인 한국의 실상은 더욱더 충격이였다.

고층건물이 즐비하며, 도로엔 자동차로 빡빡하고, 온갖 광고판과 잘 입고 깨끗한 사람들로 가득한 대도시, 

상점들엔 물건이 가득하여 물건을 구매하기(또는 배급 받기) 위해 기다리는 줄(공산권 특유의 사회 모습)도 없는 

전형적인 자본주의적 도시풍경은 자신들이 여태 속아왔다는 사실을 확인 시켜 주었다.

안그래도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가득했던 동유럽 공산권 사람들이 느꼈을 배신감은 곧바로 반응이 나타났다. 



서울 올림픽이 끝난지 1년도 안 지난 시점에

1989년 2월1일 한국과 헝가리는 공산권과는 최초로 수교를 맺었다.

(공산권 최초 수교, 북한 외교엔 치명상이였다.)

헝가리는 북한 동유럽 외교의 간판 국가였고,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이 대사로 있던 나라였으며

이 사건으로 인해 북한은 헝가리 공관을 대사에서 참사급으로 격하시켰다.

이후 1990년 7월 부터 동유럽권 유학생들의 철수가 단행 되었다.

(참고로 헝가리는 한국전쟁시 한국을 간접지원 및 지원표명국 63개국에 포함된 유일한 공산권 국가였다.)



1990년 소련 학술지들은 남한에 대한 북한의 태도(주로 남한에 대한 북한의 거짓 선전선동에 대해)를 비난하는등, 북한에 대한 인상이 극적으로 반전 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러시아 국민들에게 북한에 대한 인식이 처참해진건 이때부터 이다) 

그리고 1990년 9월3일 한국은 소련과 수교했으며, 1991년 9월 17일 한국은 유엔에 가입했다.

1990년 12월 13일 노태우-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만남 등

한국이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과 급속도로 밀착하게 된다.



이 당시의 동구권의 반응을 보면 실상보다 훨씬 더 한국을 치켜세우는등, 한국이 자신들의 모델이라고 하기도 하며

서울 올림픽을 통해 깨져버린 인식이 이렇게 거대한 반전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이후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외교를 통해 서구 자본주의의 국가인 한국으로 부터 동유럽 투자도 시작 되었기도 하다.  

서울 올림픽은 탈냉전 그 자체를 제외하면, 이 시기 가장 큰 충격파를 동유럽에 던진 사건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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