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역사
이참에가자 심각한 베네수엘라, 전체적인 시각으로 한번 쭉 훑어보기
2018-08-10 19:16 | 조회수 : 2 | 댓글 : 0

<시몬 볼리바르 1783 ~ 1830>

베네수엘라는 스페인의 콘키스타도르에 의해 식민지화 되기 전까진 브라질 아마존 원주민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상당한 수준의 국가화와 문명화를 이룬 중남미국가들과도 차이가 상당했고, 가장 가까웠던 잉카제국과도 전혀 교류가 없던 지역이였죠.
그래서 사실 베네수엘라의 독립을 추구했던 세력도 크레올 세력이였습니다.


크레올은 북미와 남미에서 의미가 약간 달라지는데
북미에서의 크레올이란 백인과 흑인간의 혼혈을 의미하고 남미에선 남미의 식민지에서 나고 자란 백인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북미에선 그다지 차별이 심하진 않았지만, 중남미에선 오리지날 유럽인과 차별이 확연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남미의 크레올 세력은 세력화를 이룰수도 있었고 그 세력으로 독립을 추구하게 된 것이죠.
(참고로, 베네수엘라 크레올은 주로 독일과 이태리계 백인으로,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5세가 자기 영지에서 차출해서 보낸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이 크레올이 차별 당했다고 해서 모든 인종차별에 반대 한 건 아닙니다.
이들도 흑인이나 현지 원주민에 대한 대단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니깐요, 아니 아예 인간의 범주에 포함지키지도 않았죠.


남미 독립의 아버지라 불리는 "시몬 볼리바르"의 혁명이 순식간에 박살나 버린 원인 중 원주민에 대한 차별도 그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몬 볼리바르"를 독립 영웅으로 여기는 국가는 그의 모국이라 할 수 있는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볼리비아, 에콰도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볼리바리는 "그란 콜롬비아"란 국가를 만들었지만 순식간에 국가가 쪼개져서 저렇게 여러 나라로 분할 되었습니다.
그란 콜롬비아가 쪼개지는 계기는 베네수엘라와 콜로비아 지사간의 반목이 원인이였는데, 이때 이후로 이 두 국가는 원수로 지내고 있습니다
시몬 볼리바르가 마치 대한민국의 단군과 같은 존재로써, "시몬 볼리바르"는 그 당시, 이제 막 독립한 미국을 앞으로 아메리카에서 가장 강력하게 성장 할뿐만 아니라 남미의 적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가로 꼽았습니다.

남미국가들의 반미 정서에는 이런 시몬 볼리바르의 미래 예측도 한몫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에서도 가장 꼴보수적인 신앙관과 마녀재판장이 19세기까지 존재했던 국가가 스페인이였고 그 스페인의 정체성을 그대로 이식한게 남미국가들이란걸 생각해보면 시몬 볼리바르도 그 사람들의 사고방식 속에선 신앙의 형태로 존재 할 수도 있다고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이후 남미국가들 대부분이 군벌들에 의한 자연적 지방분권형 국가들이 되어버렸고, 중간에 강력한 독재자가 출현해 국가 주도형 경제개발을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베네수엘라도 1918년 석유개발에 성공하여 산유국의 반열에 오릅니다.
그렇지만, 1935년 "후안 빈센테 고메즈"라는 마지막 독재자의 사후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 같은 혁명의 시기에 접어듭니다.
베네수엘라는 1958년 반공주의 군부가 시민혁명에 의해 물러나고, 이후 1976년에 여러 정치투쟁 등을 마무리 하고 군부와 재계 농민 노조 등이 합의하에 국가가 안정화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안정화 되지 못한 세력은 바로 토착 원주민 세력으로 이들은 여전히 크레올로부터의 차별과 그 차별로 부터 방어하기 위한 무장투쟁을 전개하여 정글은 이들의 차지가 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크레올과 원주민간에는 아주 깊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로 그 석유국유화가 등장합니다.

석유 국유화는 시기적으로 신의 한수였는데, 바로 이때가 중동전쟁으로 인한 1차 석유파동, OPEC에 의한 2차 석유파동의 시기였습니다.
이 시의적절한 석유국유화는 베네수엘라를 단번에 남미 최대의 부국으로 올려놨습니다.
그러나 이런 황금기는 불과 십여년 정도에 불과했는데, 미국발 금리인하와 플라자 합의로 유명한 달러가치 조정등의 여파로 순식간에 경제가 추락했는데, 이때 쿠데타를 일으킨 인물이 "우고 차베스"중령이였습니다.
쿠데타 자체는 실패했지만, 결국 페레즈 정권은 물러났고, 베네수엘라는 IMF를 맞으며 석유를 다시 민영화하고 극심한 빈부격차의 시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이런 혼란통인 1998년에 쿠데타에는 실패했지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우고 차베스"가 대통령으로 당선됩니다.

 

<우고 차베스 1954 ~ 2013>

 

그리고 마침 석유가가 다시 고공행진을 하며 베네수엘라를 살려줬습니다.
석유판매 자본을 기반으로 무상교육,무상의료,저가주택, 적극적 시장개입 등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며 선거마다 연전연승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무상시리즈 포퓰리즘으로 국민들의 눈을 멀게 해 놓고 차베스는 종신대통령에 취임했으며, 사법부와 입법부에 개입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고, 언론과 야당을 적극적으로 탄압하게 됩니다.
차베스의 이런 무도한 정치 행태를 비판하는 주변국들과 시비가 붙게 되었습니다.
베네수엘라와 인접국들 중 사이가 좋은 나라가 없고, 느닷없이 이웃한 소국인 가이아나의 영토 2/3에 해당하는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는등 엉망진창을 이어갔습니다. 
차베스 대통령 사후 마두르 대통령이 집권하게 되는데, 모두가 알다시피 유가 하락이 지속되자 모든 경제활동을 석유에 의존하던 베네수엘라는 당장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합니다.

 

<니콜라스 마두로 1962 ~ >


유가로 인해 수익이 감소하자, 그동안 높은 수준의 사회복지 비용을 충당할 수 없게 되고, 결국 통화를 남발하게 되어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식량 수출국에서 식량 수입국으로 전락한것도 모자라 수입한 식량의 분배권을, 친 여당 계열의 시민의원에게만 권한을 주고 결국 총선에서 실패하자, 당선된 의원들을 부정선거라는 명목으로 국회 등원을 막는등 무도함이 극심해지자 판사들 11명이 칠레로 망명하는 등, 정치적 망명이 빈발해지게 됩니다.
이와중에 총기소지까지 자유로와 곳곳에서 무장강도가 기승을 부리고 배고픈 국민들은 사이가 나쁜 콜롬비아 국경을 넘고, 이제는 브라질 국경까지 넘고 있으며 동물원의 동물까지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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