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동아시아
있어비 임진왜란 때 일본함대 규모와 조선수군 규모
2018-06-27 11:16 | 조회수 : 5 | 댓글 : 0

군사력 증강

히데요시는 전투 부대의 병종을 기병과 보병 두 가지로 대별하고 사무라이대장(侍大將)의 지휘 하에 기병, 총병, 궁병, 창검병 등의 단위대를 편성한 후에 각조 지휘관으로서 기사와 보사를 두었다.

이렇게 변모된 군사력을 배경으로 하여 1586년 무렵에 대규모 건조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하여 조선 침공 직전에 전함 천여 척을 이미 확보한 데에 이어서 종전 무렵에는 3천여 척이나 되는 대규모 선단을 보유할 수가 있었고 조선을 침공하기 직전인 1591년에는 사이카이도, 난카이도, 산요도, 산인도, 기나이와 그 동방 일부 지역에 동원령을 내려서 병력 33만을 동원할 준비하였다.

1586년 히데요시는 일본 수군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유럽의 범선인 카락과 갤리온 구입을 시도했었는데 포르투갈인의 거절로 구입에는 실패했다[10].

당해 5월 오사카에서 히데요시를 알현한 예수회 일본 준관구장 가스파르 코엘료(영어, 신부)는 그에게 포르투갈 배의 구입과 항해사의 고용 알선을 명받았다.

그러나 1587년 지쿠젠 국 하카타에서 선교사 추방령을 내려지고 이로 인해 예수회 선교사들이 규슈 서남 지방으로 잠복하게 되어 예수회는 직접적으로 전쟁(후의 임진왜란 등)에 가담하지 않게 되었다.

일본 예수회는 애초부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전쟁을 불의한 전쟁으로 보았으며,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해볼 때, 권력 투쟁의 불안과 침략 전쟁(임진왜란) 기피로 일본 국내에서 반란이 일어나리라고 예상하고, 만일 반란이 일어나면 히데요시가 실각하게 되어 기리시탄 다이묘들이 자신들의 직위를 보전하게 되고 사제 추방령 철폐, 선교 활동의 자유도 보장되리라 예상하였다.

하지만 히데요시는 그런 사태를 잘 처리하였기에 반란은 일어나지 않았다[11].

이 무렵 일본군은 뎃포, 창, 궁시, 일본도를 충비하고 있었으며, 주종 간 단결력이 막강하였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실전 경험이 풍부하으므로 전쟁에서 탁월한 전력을 발휘할 수가 있었다.

https://ko.wikipedia.org/wiki/도요토미_히데요시

 

 

참고로, 일본 수군 규모는 대략 1천척~3천척 사이입니다.

고려시대 왜구가 날뛰던 시절,

이걸 최영장군이 토벌을 하기 위해,

하지만, 띄엄띄엄 쳐들어오고, 육전과 해전의 연패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는데,
그 때 나온게 정지 장군과 최무선의 화약무기였죠.

그래서, 왜구함대를 화약무기와 
보다 발달된 해전 전술로써 격파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왜구의 장기인 등선백병전을 막기위해, 
갈고리와 길다란 낫이 달린 창을 이용해 붙지도 떨어지지도 못하게 만든 상태에서, 
화약통에 불을 붙여 던져 배를 격침시키는 방법도 있었는데, 이런게 다 고려시절에 
이미 만들어진 전술이었습니다.

이게 조선수군으로 이어져 내려온 것이죠.

히데요시는 일본 각 지방 다이묘들에게 
병력과 물자 징발, 건조 명령을 내려서 
병력과 물자, 함선을 할당량을 채워보내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사실 히데요시의 직계 가신들은 자신의 영지에 비해서,
상당히 큰 규모의 병력을 대량동원했죠.

그리고, 그런 배를 건조했을 때, 
노를 젓는 인원도 함께 딸려서 보내도록 한걸로 아는데..
흔히 일본수군 병력으로 나오는 것은 순수 전투병력들을 말합니다..

위의 인물들은 일본에서 해적다이묘라 불리우는 사람도 있고, 
일부는 히데요시의 가신이기도 하고, 지방 다이묘 급도 있는데..

종종, 육지에서 바다로 지원나간 그런 육군 소속 다이묘들도 있습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이순신 장군이 직접 거느린 전라좌수영은 규모가 판옥선 23척 수준..
이억기 장군이 거느린 전라우수영은 규모가 판옥선 25척 수준.

 

출처 :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total&no=8537916

 

경상도 수군의 경우 좀 차이가 있긴한데..
박홍의 경상좌수영이 30~40척. 
원균의 경상우수영이 70~100척 정도로 잡고..
전라좌수영 + 우수영이 50~70 여척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즉, 경상,전라도 수군은 판옥선이 최소 150척~최대 210척 규모입니다.

 

 

 

그림으로도 알 수 있겠지만, 
사실 세키부네와 판옥선의 체급차이는 좀 큰 편입니다.

비록 숫자 자체는 얼마 안되지만, 
조선수군의 주력함선인 판옥선은 저런 크기고..
 
서양으로 치자면 대포 숫자가 
전열함 아래쪽의 프리킷 내지 코르벳 수준의 함선입니다.

물론, 조선의 화포는 
서양의 함포보다는 화약량이 적고, 구경도 작고, 가벼운 편입니다.

그래도, 판옥선이 만약 전함(BB)급이나 중순양함(CA)급이라면, 
세키부네는 구축함(DD) 급 수준 밖에 안되는 물건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어쨋든 이순신 장군이 참가한 해전에서 격침된 일본 수군 전선의 수는 
제가 합산해본 결과 837 ~987 척에 달합니다.

일본수군은 개전 초 1천여척, 
추가로 건조한것까지 치면 총 3천척 규모인데..
거의 1/3이 박살난 것이죠. 

즉, 2100여척 정도가 남아서, 병력 수송과 보급운송을 담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부산포를 공격한다는게.. 

왜 어려운 일이냐면? 이순신 함대만 만나면 쳐발리는 일본군이..

아예 남해안을 따라서 저런 난공불락의 왜성을 수두룩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죠.

 

그러니 이순신 장군도 쉽게 공격하기 어려웠던거고, 

저 왜성 아래쪽에 왜선들이 보호받는 상태인데. 어찌 공격하겠습니까?

 

어쨌든 이런 이유로 나중에 가토 기요마사가 정유재란 때 건너오는 걸 요격 못했다는 이유로, 

삼도수군통제사 직에서 해임되어 서울로 가서 모진 고초를 겪으신거고, 

 

원균이 대신 삼도수군 통제사가 되어 부산쪽으로 나가다 GG 치는 순간, 

왜선 1천척이 몰려와 기습을 해대니 이순신 장군이 키웠던 180척 가까운 판옥선과 

조선수군 2만명이 한방에 물귀신이 되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남은 게 전선 13척과 병졸 수백병이었던거죠.

이걸 나중에 우여곡절 끝에 복구시킨게 대략 판옥선 83척인거고..

그걸로 노량해전에서 500척의 적선을 상대로 450척을 작살내는 기염을 토합니다.

(격침 200, 파손 150, 노획 100, 도주 50척)

 

어쨌든 판옥선 기준으로 보면, 

대략 임진왜란 때 조선수군은 180척 정도지만, 

중소형 선박을 합치면 또 숫자가 더 늘어납니다만, 

일본 역시 그런 중소형 선박은 합산 안한 상태로.. 주력함선만 놓고 보면 저렇다는 겁니다.

 

 

 

요약:

1. 조선 수군은 판옥선(대선) 대략 250척 규모.. 경상, 전라수군 합치면 대략 150~200척 수준..

2. 일본 수군은 1천척~3천척 규모.

3. 이순신 장군이 지휘한 해전에서만 박살내거나 노획, 파손한 일본 배가 987척

 

 

원문 : http://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26395 

 

1
0
카카오톡 공유 보내기 버튼 트위터로 보내기 페이스북 보내기 스크랩 신고하기

Copyright © Ubuno All Rights no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