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브라우니 남혐, 여혐에 대처하는 자세
2016-08-03 14:20 | 조회수 : 764 | 댓글 : 0




근본적으로 대한민국 사회는 민주주의를 그 당시의 완성품 형태로 전수 받았습니다.

이안에는 여성 참정권과 같은 권리도 역시나 같이 끼워져 있었습니다.

완성품 형태로 전수 받아서 시행착오를 겪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었으나,

정작 민주주의 진행 과정중에 발생했던 수많은 고뇌의 과정도 생략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놓쳐버린 민주주의 형성 과정을 다시 복기해야 하는 시기에 놓여있습니다.

경제는 압축적 성장이 가능하지만 사람들의 의식변화는 압축 성장이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서구의 민주주의도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것이 아니고 수많은 삽질과 코미디 같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아주 작게나마 이루어진 수많은 성취들의 결과물이였고 그 와중에 자연스럽게 "우리도 모두 인간이다"라는 의식이 자라나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그런 과정중에는 영국의 노예해방 운동이 있었고, 미국의 남북전쟁을 끝으로 사실상 노예해방 운동은 끝을 보았습니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는 다르지만요..)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백인이면서 여성이였던 사람들은 어느날 눈떠보니 자신이 노예로 부리던 사람들보다도 자신들의 권리가 현저히 떨어짐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존의 남성우위의 사회는 너무나 기나긴 역사를 통해 자연스레 받아들여 왔지만,

그 남성와 여성 사이에 흑인노예였던 사람들이 끼어들면서 여성들 사이에 의미있는 의식변화가 시작 되었습니다.

서구의 여성운동이 그 사회의 노예해방 운동과 더블어 시작되었다는 점을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여성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그 시작점이 "권리주장"이 아니라 "차별금지"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사회갈등의 이슈로 비슷합니다.











Suffragette라는 2015년작 영국 영화가 있습니다.

영국의 여성운동중 폭력적 여성운동을 주장했던 단체 "서프러제트"를 다룬 영화입니다.

사실 이 영화가 폭력적 여성운동의 본질을 잘 설명했다고 보진 않습니다.

겉만 살짝 훑고 지나갔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제가 눈여겨 본 대목은 여성운동원의 남편이였습니다.

여성운동원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던 것은 가장 가까이 있는 자기 가족, 즉 남편이였습니다.

그리고 이 여성운동원의 여성운동의 시발점은 12살때부터 일해왔던 자신의 직장에서부터 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보여지듯 여성운동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갈등의 시발점은 자신을 둘러싼 삶의 현장에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영국 사회의 여성운동은 전쟁이 해결해 줬습니다.

1차 대전을 통해 남성이 모두 전쟁터로 가 있는 동안 생산현장은 여성의 몫이 되었고, 전쟁이 끝나 남성들이 돌아오자 여성들은 모두 쫓겨날 처지에 몰렸습니다.

모든 여성은 위험한 현장에서의 근로 행위를 제한한다는 기만적 "여성보호법"을 통해 전쟁중에는 잘만 해치우던 일들이 이제는 여성은 일 할 수 없는 위험한 현장이 되어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미 고분고분 해지기를 거부했던 여성은 크게 반발했고, 이미 생산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여성은 "권리라고 부르고 차별금지"라고 해석하는 권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아 그래서 가장 남성적인 행위인 전쟁을 통해 여성이 권리를 얻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위에 나열한 사실들은 본질이 아닙니다.

즉, 갈등의 해결 방법은 그때 그때 상황 상황에 따라 제각각 달라지는 특별한 해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모든 갈등에는 유일한 해법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인클루저 운동이 있었고, 프랑스에서는 대혁명이 있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대혁명의 결과로 프랑스 왕조는 막을 내리고 공화정이 시작되었지만,

영국에선 여전히 왕조국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시끌벅적 했지만,

영국의 인클루져 운동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프랑스는 갈등을 피로써 해결했고 영국은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물론 그 시대의 기본적인 인성이 있기 때문에 영국도 사회갈등 속에 피의 역사가 없지는 않았지만 프랑스에 비하면 조적지혈이란 이야기입니다.

(맨유로 유명한 맨체스터에서 있었던 군중집회에 기병대가 돌격하여 군중을 학살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인클루저 운동의 결과, 유명한 차인 "얼그레이"로 유명한 당시 수상이였던 그레이 백작이 새로운 선거제도에 서명함으로써 끝을 맺습니다.

영국은 무모한 진압도 있었지만, 그래도 민중의 주장에 대해 꾸준히 경청을 해왔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결론은 "조사결과 수용불가" 라는 걸로 나오기는 하지만요

역사속에 이런 디테일한 부분이 묘사가 잘 안되어 있지만,

영국과 프랑스의 갈등 대처에는 이런 사소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갈등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원동력은 갈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갈등의 해결은 무슨 특별한 능력이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필요한게 아닙니다.

그 갈등을 받아들이는 사회 구성원의 태도가 가장 중요한 키입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차이는 바로, 경청하는 자세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갈등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회, 그 화자의 언사를 들어주는 자세, 사실 이것만으로도 갈등의 폭주는 예방이 되고

또 갈등의 디테일을 알게 될때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면 지지가 되고,

지지가 되면 합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에 언급한 갈등의 유일한 해법은 바로 "경청"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고 있는 남혐, 여혐은 각자 따로 놀고 있습니다.

일단 일베로부터 시작된 여혐은 그들의 주장이 어디로 부터 왔는지 추측만이 난무 할 뿐입니다.

또한 미러링이라는 형태로 여성일베를 시현하고 있는 메갈의 주장도 단순 페미니즘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전 포스트의 댓글에서 언급했듯이 청소년 시절의 일상 생활에선 이미 성차별이 없는데,

남자 청소년들은 병역의 의무까지 지고 있고,

그렇다고 늦어진 사회진출에 대한 어떠한 보상도 없고,

그들의 희생에 대한 감사는 커녕 어떠한 동의도 받고 있지 못하며,

오히려 "집 지키는 개"라는 혐오성 발언을 페미니스트가 방송에서 당당히 발언을 하기도 했죠.

당연히 청년남성에 대한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반대로 여혐을 일삼는 남성들에 대해 그냥 일부다,

우리도 쟤네 싫어한다 이걸로 끝 맺어버리지만,

정작 그 또래의 여성들은 지속적인 간접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해법은 일단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사회적 태도입니다.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로써 바라볼 것이 아니라 무엇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탐색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로 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부모와 자식, 교사와 학생, 지도자와 구성원 간의 흔히 발생하는

"대화라는 제목의 훈계질"이 아니라 진짜로 듣어 주는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런 경청의 자세의 근본에는 남자건 여자건 "우리 모두는 인간 이다"라는 인정이 필요합니다.













모든 갈등, 문제의 어설픈 땜질 처방이 되지 않으려면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경청의 자세가 확립 될 때 감정은 누그러지고 이성이 통하는 진짜 대화가 시작됩니다.

너무 쉽기 때문에 잘 밝견되지 않는 유일한 해법은 바로 이것입니다.





위에 주저리 주저리 나열했던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배울것은

경청이 배제되고 해결만이 강조될때 프랑스 대혁명의 과정을 밟을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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