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아가는 예뻐 그 누구도 지식의 경험을 넘어설 수 없다
2016-08-30 12:38 | 조회수 : 165 | 댓글 : 0

존 로크(1632~1704)

 

전통적으로 존 로그(John Locke)는 후대의 철학자 조지 버클리, 데이브드 흄과 함께 영국 경험주의자로 분류된다.
경험주의자들의 일반적 견해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지식은 우리가 감각으로만 얻는 경험에서 직간접적으로 비롯한다.
이는 르네 데카르트, 바뤼흐 스피노자,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같은 합리주의자들의 견해와 대조를 이룬다.
그들은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이성만으로 지식을 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실상 이 두 집단을 나누는 선은 흔히들 생각하는 것만큼 뚜렷하지 않다.
합리주의자들은 세계에 대한 우리 지식이 근본적으로 경험에서, 특히 과학탐구에서 비롯함을 수긍한다.
또 로크는 감각으로 경험한 사실에 이른바 가추법을 적용함으로써 세계의 본질에 대한 독특한 견해에 도달한다.
예컨대 로크가 제시하는 증명에 따르면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에 대한 최선의 설명은 미립자론이다.
우리는 그 미립자에 대해 직접적 지식을 얻을 수 없지만 바로 그것이 존재하는 덕분에 그러지 않았더라면 설명하기 힘들거나 불가능했을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미립자론은 17세기 과학사상계에서 날로 인기가 높아지던 이론으로 로크가 물질적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의 토대를 이룬다.

 

본유관념


그러므로 그 누구의 지식도 경험을 넘어설 수 없다는 주장은 로크의 말로 보기에 부적절하거나 적어도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간오성론"에서 로크는 합리주의자들이 경험없이 지식에 접근하는 법을 설명하려고 내놓은 이론을 꽤 길게 반박한다.
그 이론은 바로 본유관념론이다.
인간이 본유관념을 품은 채로 태어나며 그 덕분에 경험과 상관없이 세계의 본질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개념의 유래는 철학의 태동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플라톤이 발전시킨 개념에 따르면, 참된 지식은 모두 본질적으로 우리 내부에 있다.
하지만 우리가 죽으면 정신은 새로운 육체를 취해 환생하는데, 탄생의 충격 때문에 우리는 그 지식을 모두 잊어버린다.
그러므로 교육이란 새로운 사실을 아니라 이미 아는 지식을 "잊지 않도록"하는 일이고 교육자는 선생이 아니라 산파다.
그러나 후대의 사상가들은 플라톤의 이론에 반기를 들고, 모든 지식이 본유적인 것은 아니며 한정된 수의 개념만 그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것엔느 신의 개념과 정삼각형 같은 완벽한 기하학적 구조의 개념이 포함된다.
그들의 관점에 따르면 이런 종류의 지식은 직접적인 감각경험 없이도 이성과 논리의 힘만으로 수학공식을 만들어내는 방식에 따라 습득할 수 있다.
이를테면 르네 데카르트는 인간의 마음속에 신이라는 개념이 각인되어있다고(도공이 도자기의 점토에 남기는 표시처럼)믿긴 하지만, 신의 존재에 대한 그 지식을 자각하려면 반드시 추론과정을 가져야 한다고 언명한다.

 

로크의 반박


로크는 인간에게 본유적 지식이 있다는 견해에 반대했다.
그렇다고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철학 전반에 대해 총체적 반박을 한것은 아니다.
그것은 로크 스타일이 아니다.
그가 데카르트에 반대하는 것은 본유관념에 대한 대목에서다.
데카르트가 이야기하는 본유관념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대목에서 나온다.
데카르트가 철학의 제1원리라고 부른 "생각하는 나"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내 안에 있는 세 종류의 관념(내 마음의 바깥에 있는 사물에서 온 외래관념, 내 마음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생겨난 인위관념, 내 마음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생겨난 인위관념, 그리고 오로지 "생각하는 나"에서 비롯된 본유관념)을 분석한다.
데카르트는 이러한 본유관념으로 생각하는 나, 수학의 원리, 도덕의 원리, 그리고 신의 관념 등을 꼽았다.
이 대목에서 로크는 이의를 제기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철학으로서의 경험론이 출발한다.
그가 취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이 갓 태어났을 때 정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는 빈 서판과 같다.
빛이 사진필름 위에 상을 만들듯이, 경험이 백지 상태의 서판 위에 글을 쓰는 것이다.
로크에 따르면 우리는 감각으로 수집한 정보에 이성을 적용하는 기본적 인간능력 외에는 그 과정에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는 갓난아이의 정신이 백지상태가 아님을 보여주는 실증적 증거가 아예 없다고 주장하고는, 지적장애인의 정신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이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들은 자신을 조금도 이해하거나 생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로크는 본유관념의 존재를 지지하는 학설은 모두 틀렸다고 단언한다.
이어서 로크는 본유관념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순이라고 주장하며 그것을 공격하기도 한다.
어떤것이 생각이 되려면 우선 누군가의 정신에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로크가 지적하듯, 어떤 생각이 순수하게 본유적이라고 주장한다면 결국 그것이 어떤 유형의 경험보다도 선행한다고 주장하는 셈이 된다.
로크는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가 말하듯 물론 어떤 생각은 너무나 기억 깊숙이 자리잡고 있어서 당분간 생각해나기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 도 있고, 따라서 마음속으로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합리주의자들은 본유관념이란 그것을 떠올려 의식으로 불러오는 메카니즘이 일어나기도 전에 어딘가에 어떤식으로든 존재한다고 믿는다.
본유관념의 존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주장하기도 한다.
본유관념은 출생 당시부터 모든 인간에게 존재하므로 분명히 본질적으로 보편적이다.
이는 곧 그런 관념을 역사의 모든 시점, 모든 인간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뜻이다.
예켠대 플라톤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동일한 기본적 지식에 접근할 기회가 잠재적으로 있으며, 그런 점에서는 남자와 여자, 노예와 자유인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외 비슷하게 로크의 시대에는 이런 이론이 자주 제시되었다.
오직 신만이 본유관념을 우리에게 심어놓을 수 있으므로 그 관념은 분명히 보편적이다.
신은 선택된 집단의 사람에게만 그것을 나눠줄 만큼 불공평할리가 없다.
로크는 우리의 주변 세계를 살펴보기만 해도 그것이 존재하지 않음이 분명해진다고 또 다시 강조하며 보편적 관념에 대해 주장을 맞받아친다.
로크의 주장에 따르면 설령 세상의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품은 개념이나 관념이 존재한다 해도 그것이 본유적이기도 하다는 결론을 확고히 뒷받침할 근거는 전혀 없다.
게다가 그런 보편성을 달리 설명할 방법을 찾을 가능성도 항상 있다.
예를 들면 그 보편성은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경험하는 가장 기본적 방식, 즉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만 하는 방식에서 비롯할지도 모른다.
서기 1704년 고트프리트 라이프니는 "신인간오성론"에서 로크의 경험주의적 주장을 반박했다.
라이프니츠의 주장에 따르면 본유관념은 우리가 감각경험에 기초히자 않고 지식을 얻을 수 있는 한가지 확실한 방법이고, 로크가 그 가능성을 부정한 것은 잘못이다.
"인간이 오감으로 지각하는 것을 넘어서는 대상을 알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그후에도 계속 된다.

 

본유적 언어

 

로크는 본유관념론을 부정하긴 하나, 인간에게 본유적 능력이 있다는 생각까지 부정하지는 않는다.
사실상 지각력과 추리력 같은 능력의 존재는 지식과 이해의 메커니즘에 대한 그의 설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20세기말에 미국 철학자 노암 촘스키는 이 생각을 발전시켜 모든 인간의 정신에 들어있는 본유적 사고방식이 언어의 보편적 "심층구조"를 형성한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촘스키의 신념에 따르면, 컽으로 드러나는 구조적 차이가 어떻든 간에 인간의 언어는 모두 공통된 기반에서 생겨났다.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이해가 미증유의 속도로 확장되던 시대에 로크는 인간의 지식습득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이전의 철학자들,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중세 스콜라학파 사상가들은 현실의 어떤 측면은 인간의 정신으로 파악할 수 있는 차원밖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로크는 이 생각을 더한층 발전시켰다.
인간의 정신력을 면밀히 분석함으로써 그는 인식 가능한 범위의 명확한 한계선을 정하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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