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m 인문학적 질문의 과학적 대체
2019-07-29 05:52 | 조회수 : 3 | 댓글 : 3

수학과 과학이 발전될수록 인문학에서 제기되어 왔던 질문들이 보다 명확히 해명되고 또한 논의할 의미가 있는지 아닌지 파악하는 것이 가능해져 왔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인문학은 수학과 과학의 도구로 이미 전락된 것이며, 그런 인문학적 종류의 토의는 쓸모 없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 이유는

1. 인문학적 논의는 자유로운 사상의 교류에 바탕을 둠이 본질적으로 맞겠으나, 효용성의 측면에서 과학이 인문학적 질문에 대해 보다 명확한 해결책을 제공한다.
ex1) 인문연구소에서 통계자료를 근거로 사용하는 추세가 지속, 주류화(일종의 문화화=의무화의 조짐)됨.
ex2) 어떤 자유로운 철학적 명제들보다 다윈적 혹은 신세대의 자연선택설이 인간행위와 오성을 더 잘 설명함.

2.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보면 알 수 있듯,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에서 제기되는 질문은 답할 수 있는 것과 답할 수 없는 것으로 나누어야 하며, 답할 수 있는 것만을 답할 때, 답하지 못했던 것은 그 속에서 자신을 자명히 드러낸다고 했으며, 이러한 사상은 곧 폰 노이만과 앨런 튜링등의 수학자들에 의해 컴퓨터를 탄생시키게끔 한다.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 이후 철학에서 던져 왔던 질문이나, 종교적 질의 응답, 심리학적 가설 등은 이에 따라, 답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여 토론하길 포기해야 하며, 토의 가능한 수학, 과학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시간 낭비를 줄이고 역사 발전에 보다 이바지하며 주류이다.

3. 인문학의 공부는 사람을 풍요롭게 하고 결국 수학과 과학의 중요한 발견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아인슈타인은 인문학과 예술을 사랑했다.
또한 시카고 대학은 저학년 때 철학공부를 필수화 하였고 그 대학에는 노벨 수상자들이 굉장히 많다. 하지만 많은 현대의 논문에 따르면, 전통적인 인문학과 예술을 혐오한다고 선언한 수많은 사람들도 똑같은 많은 수학적 과학적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으로 보이며, 수학과 과학만 한다고 시너지를 못 받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문학은 고정관념을 형성할 수 있다. 인문학이 수학과 과학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처럼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인문학 공부는 시너지나 자유로운 영혼의 발달엔 도움을 주더라도, 같은 논리로 수학과 과학적 발견을 반대로 저해할 수도 있다.

4. 컴퓨터와 ai의 등장은 인문학적 질문과 질서(법 경제 말고)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메카니즘으로의 전환이다. 이 전환에서 인문학은 지금 선진국들에서 행세가 점점 보이듯이 언젠가는 멸종할 것이다.

저는 인문학, 미술, 순수진동을 제외한 음악, 과거의 종교, 연예활동은 멸종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사회적 질서의 유지에 필요가 없어지는 때에 말이죠. 실제로 그들은 점점 이 사회에서 2차물로 취급되어 가며, 자아를 잃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치매걸린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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