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동아시아
우리동네빵집 왜 한국은 서구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나
2014-06-07 11:33 | 조회수 : 490 | 댓글 : 2
외국에서 발간되는 자료나 서적을 보면 참 이상하리만치 한국은 외면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얼마전 언어/문명과 관련된 서적을 읽다보니, 당연히 한글이 비중있게 등장하리라 생각했지만, 그 두꺼운 책에서 한글은 단 몇줄을 언급하고 말더군요..

그러면서 일본어는 상당히 자세한 분석이 나와있고, 저는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인디언의 언어에 대해서는 엄청난 분량의 서술이 있는것을 보며... 참 씁슬하기도 하고, 왜 이렇게 한국은 잘 알려지지 않았나는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순전히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왜 한국은 서구세계(서구세계의 눈을 통해 전세계로 전파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서구세계를 의식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에 알려지지 않았나 생각해 보았습니다.(중국/일본에 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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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중국은 이미 역사시대 이전부터 대부분의 문명세계에는 알려진 지역이였습니다.

바로 우리 민족이 이동해 왔을것으로 생각되는 중앙아시아의 통로를 통해 여러민족이 교류를 이어왔기 때문에 당시 최소한 서아시아까지는 중국의 존재를 모를리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알렉산더 제국 이후 로마 시대에 접어들면서 중국과의 비단 무역을 통해 이미 그때부터 서구에서 중국은 상식의 수준에서 알려진 지명(정확한 국가명은 아니더라도..)의 수준에 도달했을 것입니다. 진나라가 china의 어원이 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시대부터 본격적인 상식이 되기 시작했겠지요.

그렇게 된데에는 비단이라는 블루오션의 상품이 절대적인 역활을 했고, 이미 정착된 실크로드를 통한 원할한 공급라인이 뒷받침된데 따른것입니다.

돌궐계 국가들이 비단유통을 통해 강국으로 부상했으며, 고구려의 영양왕도 이 비단무역에 발 담그려다 뒤통수 맞았을 정도로 중국의 시작(서구세계의 상식으로써..)은 비단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입니다.



오스만 투르크가 동로마 제국을 먹고, 이어서 베니스의 숨통을 막아버릴 의도로 시작된 무역봉쇄로 인해 대항해 시대가 막을 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정작 베니스보다는 제노바가 먼저 박살나버리고 제노바인 한명이 무려 33명의 군주들을 쫓아다니다 마지막으로 이복 오빠와의 전쟁을 이제 막 끝낸 이사벨라 여왕을 설득해 인도로 가는 루트를 찾아 서쪽으로 항해해 갑니다.

그리고 바로 옆동네는 왕의 동생으로 항해에 관심많은 왕자의 후원으로 희망봉을 돌아 (당연한 얘기지만) 먼저 인도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영국과 연합하여 이제 막 독립한 네델란드가 영국이 무적함대를 박살낸(?) 빈곳을 뚫고 인도네시아에 도착하여 꿈의 상품인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게 됩니다.

(향신료는 베니스가 베니스가 된 이유이며 콜럽버스가 아메리카로 출발한 이유이며 오스만 투르크가 동로마 제국을 박살낸 버린 이유이기도 하며 아랍의 문명이 유럽에 뿌리내리게 되는 베이스이고 현대 화학의 중요한 단초를 제공했으면서 부의 원천이고 식민시대가 열리게 된 원인이 되기도 한것이죠.)

네델란드가 향신료를 통해 돈 좀 벌어볼까 하는데, 아메리카에 갔던 콜럼버스는 재앙의 식물의 가지고 귀국합니다.

콜럼버스가 가져온 고추는 어느곳에서나 잘 자라나서 향신료에 대한 절대 수요를 감소시켜 버리고, 네델란드는 또 다른 블루오션을 찾아, 이미 네델란드에게 자신의 식민지를 상실한 포르투갈인들이 지나갔던 길을 쫓아 동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그곳 중국에서 비단에 이은 초대박의 블루오션적 아이템을 찾아내었습니다.

그것은 도자기였습니다.

도자기는 네델란드에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고 또 다시 메이드 인 차이나의 시대를 서구세계를 꽂아버립니다.



한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임진왜란은 동아시아에 새로운 시대를 열게되는 단초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알기론 명나라는 임진왜란에 별 힘을 쓰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명나라는 이 전쟁으로 힘을 완전히 상실히 버리고 임진왜란으로 조선의 통제가 사라진 여진땅에선 임진왜란으로 습득한 군사정보와 함께 여진족이 일어나 중국을 먹어버렸습니다.

중국을 장악한 청은 소수의 지배계급이 강력한 피지배민을 통치하기 위해 피지배민의 힘을 빼는 정책을 추진하는데, 한족 상인의 경제력을 약화시켜려는 정책의 일환으로 대외 무역을 봉쇄시켜 버립니다.



네델란드는 또 다시 블루오션을 놓쳐버리고 맙니다.

다시 네델란드는 포르투갈인을 따라 동으로 이동합니다.

중국을 떠나 대만 해협을 지나면 곧바로 일본 열도가 시작됩니다. 이 일본 열도를 따라가다 보면 나가사키에 도착하게 되죠.

그 네델란드 상인이 일본에 도착할때쯤, 임진왜란때에 일본에 잡혀간 수많은 도공들이 일본에서 이제 막 도자기를 생산해내기 시작할때였습니다.

네델란드인은 중국에서 놓쳐버린 도자기를 일본에서 재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품질은 우수하지만 단초롭기만 한 중국자기보다는 색색모양이 들어있는 새로운 도자기를 발견한것이죠.

게다가 중국인에 비해 까다롭지도 않고 상인의 요구에 맞게 커스터마이징까지 해주는 일본산 도자기는 새로운 블루오션이였습니다.



첫째, 비단무역! 비단무역로는 상품공급지 중국이 종점입니다.

둘째, 자기 공급로는 인도를 지나 동남아시아를 지나 남중국을 따라가다 대만을 거쳐 일본열도에 접어들고 일본의 나가사키가 종점입니다.



사실상 서구문명에서 동아시아로 들어오는 두개의 루트중에 참 아슬아슬하게도 한반도는 못 미치거나 그냥 지나치게 됩니다. (만약 임진왜란이 없었다면 아마 일본 역시 없었을수도 있고, 아니면 일본을 지나 한반도까지 도착했을수도 있겠죠, 또 청나라가 없었을테니 고려시대처럼 중국을 통한 조선자기 수출이 탄력을 받았을 수도 있고, 중국을 통해 한반도로 상선이 들어왔을수도 있겠죠.)



근대 이전에 이미 중국/일본은 서구세계에선 잘 알려진 상식수준의 동아시아 국가였습니다.

위의 예에선 비단과 도자기만을 나열했지만, 실제 수많은 상거래에서 딱 두가지 상품만 교역했다고는 보기 어려울테고 이와 더블어 수많은 중국산 문물과 일본산 문물이 거래 되었을 겁니다. 일본 미술품 무역은 자기만큼은 아니지만 꽤 많은 거래가 있었다고 합니다.



같은 동아시아에 있는 삼국이면서 서구세계에 알려진 정도와 빈도가 다른지,

왜 우리는 없는 놈 취급당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단순히 현재 중국의 인구가 많아서, 잠재 시장이 가장 크기 때문에,

일본이 전자제품과 만화를 잘 만들어서 서구세계가 알아준것이 아니였던 것입니다.



이미 근대 이전부터 중국/일본은 서구세계에는 잘 알려진 상식수준의 나라였던 반면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한것의 원인은 바로 위와 같은 교역로상의 위치가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였을거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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